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지금의 위상을 갖기까지는 수많은 제도적 변화와 정책의 개선이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선수가 뛰는 경기만으로 축구는 성장하지 않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협회와 제도적 기반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작동하느냐가 축구 발전의 핵심입니다. 이 글에서는 ‘축구협회’, ‘제도 변화’, ‘진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축구가 어떤 행정적 과정과 시스템 개편을 통해 성장해왔는지를 축구코치의 관점에서 분석해보겠습니다.
축구협회의 역할과 한국 축구 행정의 태동
대한축구협회(KFA)는 1928년에 창립되었고, 이후 1948년 FIFA 가입을 통해 공식적인 국제축구 참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 시점부터 한국 축구는 단순한 체육 활동을 넘어, 국가적 스포츠 정책과 행정의 중심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축구협회는 경기 운영과 선수 선발 정도의 기능에 집중했으며, 행정 시스템은 매우 단순하고 비전문적이었습니다. 1960~80년대에는 군사정권 시기와 맞물려 국가주의 성향이 강한 스포츠 정책이 펼쳐졌고, 축구 역시 ‘국가 대표’ 중심의 스포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역할도 점차 확대되며, 국내 대회 조직, 국제 경기 대응, 심판 및 지도자 양성 등을 포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도 행정의 투명성과 전문성은 부족했고, 정치적 영향력이 체육 행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프로축구(K리그) 출범과 함께 협회의 역할도 점차 다변화됩니다. K리그는 협회 산하의 독립적인 운영기구를 통해 운영되었고, 이에 따라 협회는 아마추어 및 국가대표팀 중심, 리그 운영은 프로연맹 중심으로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행정의 구조화가 이뤄진 초기 단계로, 행정적 체계가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구조에서 점차 기능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도기였습니다. 코치의 입장에서 이 시기의 협회는 아직도 ‘통제적 운영’이 강했고, 각 연령별 대표팀이나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개입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지도자 육성 시스템도 형식적이었고, 실질적 교육보다는 인맥 위주의 선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1986년 월드컵 진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등 국제적 경험을 통해 협회의 국제 역량은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제도 변화: 유소년 육성, 지도자 자격제, 리그 구조 개편
1990년대 이후 한국 축구는 외형적 성장을 넘어 내실을 다지기 위한 제도 개편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유소년 육성 체계의 구축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학원 중심 축구가 주류였으며, 선수들이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학업과 축구를 병행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훈련의 전문성과 다양성에 한계가 있었고, 장기적으로는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 대한축구협회는 클럽형 유소년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지역별 클럽팀이 창설되었고, 이는 K리그 산하 유소년 팀까지 확장되며 ‘프로-유소년 연계 시스템’이 구축됩니다. 이 시스템은 단기 성적이 아닌 장기적인 육성을 목표로 하며, 유소년 축구의 철학 자체가 전환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지도자들 또한 단순히 체육교사 출신이 아니라, 전술·기술·심리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전문 코칭 스태프로 변모해갔습니다. 또한, 지도자 자격 제도의 강화는 한국 축구의 질적 향상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AFC 및 FIFA의 지도자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해 C, B, A, Pro 라이선스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자격 과정은 이론 수업, 실기 평가, 전술 분석, 심리학 등 다양한 과목을 포함하며,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자격증 발급이 아닌 ‘지속 가능한 학습 시스템’을 통해 지도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리그 구조 역시 개편이 이루어졌습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단일 리그 체계로 운영되던 K리그가, 2013년부터는 K리그1과 K리그2로 나뉘어 승강제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경쟁을 활성화하고, 하위 리그에도 발전 가능성을 부여하는 제도로 평가받습니다. 코치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승강제는 각 구단의 선수 관리, 전술 운영, 재정 계획에 더욱 전략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으며, 리그 전반의 질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 외에도 경기 분석 시스템 도입, VAR 시스템 정착, 외국인 선수 제도 개선 등 다방면에서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고, 이는 경기력 향상뿐 아니라 팬 경험의 질적 향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진화: 국제화 전략과 행정 투명성 확보
2010년대 이후 한국 축구협회는 단순히 국내 제도 개선에 그치지 않고, 국제화 전략을 강화하며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 힘쓰고 있습니다. 국제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는 해외 지도자 영입입니다. 히딩크 이후로 핌 베어벡, 슈틸리케, 벤투 등 유럽 출신 감독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하면서, 협회는 단순히 외국인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그들과 협업할 수 있는 국내 지도자 그룹을 양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코치의 입장에서 이러한 국제화는 매우 중요한 진화의 과정입니다. 외국인 지도자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 코치들도 새로운 전술, 훈련 방식, 피드백 구조를 체득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유소년 팀과 학교 축구 현장에 전파되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협회는 ‘지도자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내 코치들의 해외 연수 및 프로 클럽 실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행정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과거 체육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인맥 중심 인사’, ‘불투명한 예산 집행’, ‘결과 지상주의 평가’ 등은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에 협회는 외부 회계 감사 도입, 공정한 지도자 채용 프로세스 구축, 공모제 기반의 기술위원회 운영 등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책들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IT 기반의 행정 시스템도 강화되어 각종 리그 및 대회 운영, 선수 등록, 심판 배정, 훈련 일지 등 모든 과정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는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현장의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줍니다. 팬과의 소통 역시 중요해졌습니다. SNS, 유튜브 채널 운영, 공개 훈련 및 인터뷰 확대, 축구 정책 관련 대중 설문 등 팬과 협회의 거리를 줄이는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축구 문화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협회는 ‘2030 한국 월드컵 유치’ 등 장기 전략 수립에도 집중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국 인프라 구축, 성평등 기반의 여자 축구 활성화, 장애인 축구 정책 등도 동시에 추진 중입니다. 축구의 외연을 넓히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협회가 지향하는 ‘통합 축구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 축구 행정은 과거의 단순한 경기 운영 중심에서 벗어나, 이제는 제도적 완성도와 국제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체계로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코치의 시각에서 볼 때, 제도와 행정의 변화는 경기장 안의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힘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혁과 국제적 협업을 통해 한국 축구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